김대건길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와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다 표류하여 첫발을 디딘 용수포구(용수성지)에서 시작하는 뜻깊은 순례길입니다.
아름다운 차귀도 바다 풍경과 함께 제주 서부의 조용한 농촌 길을 지나 신창성당까지 이어지며, 신앙의 역사와 평화로운 제주의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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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성당 스탬프 | 용수성지 스탬프 | 신창성당 스탬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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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안내 (영상) | 위치 안내 (영상) | 위치 안내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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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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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길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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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신창상동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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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4월 한림본당 '고산공소'로 설정.
1957년 신창본당 관할로 이관.
1990년 2월 22일 본당으로 승격, 현재 청수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제주교구 순례길 중 처음 개장된 (2012) '김대건길'을 기념하고 순례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성 김대건 신부님 순례길 쉼터'를 마련,
2016년 11월 20일 축복식을 거행했다.
제주시 한경면 칠전로 1 (064) 773-2004
수월봉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제주 대표 지질명소로, 제주도에서 일몰을 가장 잘 관람할 수 있는 장소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화산재가 겹겹이 쌓인 퇴적층과 수월봉 정상의 화산분화구, 높이 77m의 해안절벽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며 차귀도 해안의 경관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주의 서쪽 끝 해안에 위치한 자구내포구는 고산리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던 정겨운 포구입니다.
수월봉 아래 위치해 있으며, 항구 중심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민간등대인 '도대불'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오랜 역사와 운치를 더해줍니다.
당산봉은 당오름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오름 정상에 당(당신)을 모셨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정상에 오르면 차귀도와 수월봉, 한경면 일대의 넓은 들녘과 제주 서쪽 바다가 한눈에 시원하게 조망되는 최고의 명소입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라파엘호를 타며 귀국길에 표착한 역사적인 성지입니다.
웅장한 기념성당과 기념관, 복원된 라파엘호가 함께 위치해 있어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일행은 어둠 속에서 차귀도에 사흘을 머물고 타고 온 라파엘호가 수리 되자마자 고국을 향해 출발을 하여 육지(강경 황산포)에 도달함으로써 비로소 사목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에 제주도 신자들과 교구는 이 곳이 시작되는 하느님의 은총과 김대건 신부의 순교정신을 알리고자 세계유일의 성당기념관을 세웠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성당과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고 연풍가의 고초를 거쳐 복원된 라파엘호를 전시하고 있으며 김대건 신부가 표착한 곳의 성모님께 기도를 드렸던 용수성지에 성모상이 함께 건립되어있다.
용수리 구기 내포구 부근에는 팽나무와 무성한 큰 바위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고씨 성을 가진 여인이 기아(배고픔)로 세상을 떠난 남편을 슬퍼하다가 바위 아래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한다.
그러자 남편의 시신이 바위 아래 해안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고씨 여인의 절개를 기려 바위에 절부암이라 새기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바위 주변에 사당을 지어 부인의 넋을 모시고 있다.
용수리 구기 내포구 이름은 '자구내'다.
한국천주교회사에는 '제주 차귀현 표착지'며 조선시대에 이 포구에서 '가파도'를 비롯한 전라남도 표류지까지 어선을 통해 육지로 드나들던 포구라 한다.
용수리 포구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일행 11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항해를 통해 귀국하는 길에 풍랑을 만나 표착한 곳으로 고국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한 뜻깊은 장소이다.
원래 한경해안도로라 불렸다.
2017년 12월 30일 김대건 신부의 제주표착을 기념하기 위하여 표지석 제막식을 갖고 이름을 바꾸었다.
용수성지로부터 신창성당까지 6km 가량이 이어진다.
가톨릭 신문은 2012년도 한국교회 10대 뉴스에서 제주교구의 '성 김대건로' 제명을 선출하여 발표 하였다.
제주교구에서는 세 번째로, 제주 서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신창공동체로서 의미가 깊은 곳이다.
복음률이 높아 전체 60~70%의 교세를 나타냈다.
1935년 제주 본당의 '신창공소'를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949년에 '용수공소'가 설정, 1951년 4월에 '신창 준본당'으로, 1952년 6월 29일에 '신창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1954년에 '한림본당'이 설립되면서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57년 4월에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이에 앞선 1955년 고산공소, 1956년 저수공소, 1957년 판포공소와 조수공소가 설립되었다.
이후 1990년 2월 22일에 고산성당이 분리되면서 청수공소는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고, 판포공소는 1994년 폐쇄되었다.
신창성당 세례대
세례성사를 집전할 때 사용되는 세례수를 담아 보관해 두는 곳